"왜 볼라허에게 덤벼든 거냐?"
"저 애가 나를 모욕해서요."
내가 분노와 긴장을 가누지 못해 몸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너를 모욕했다고? 뭐라고 했는데?"
폼페츠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보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내가 대답했다.
"아, 알겠다."
폼페츠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모욕이 아니다, 슈바르츠! 그건 옳고 우정 어린 충고야. 자리에 앉도록, 너희 둘 다. 싸우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서 마음대로 실컷 싸워라.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 두도록. 볼라허, 너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제 곧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거다. 그러니 이제 역사 수업으로 돌아가자."
서슴없이 주인공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심지어 폭력까지 휘두르는 급우와 이를 목격하고도 다그치기는 커녕 묵인하는 교사의 대사는 제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암시하는듯 하다. 나치 독일 정부가 주도한 반(反)유대 프로파간다 여파가 얼마나 깊은 곳까지 뿌리내렸는지, 그리고 그것을 일반 시민들과,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교사까지 맹목적으로 따랐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상황에서 어린 주인공이 느꼈을 무력감과 공포를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독일어를 공부하고 심지어 독일에 유학을 나오면서, 쉰들러 리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홀로코스트 관련 미디어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을 접하면서 가장 경악스러웠던 것은, 유대인에 대한 나치 정부의 탄압과 학살이 소름돋을 정도로 조직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민주 사회에서는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기본적이지만, 라디오나 TV를 통한 프로파간다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정보에 대한 비판적 수용 능력의 부재는 불가결한 것이었을지도..(실제로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한 정치선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독일의 4대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2018년 현재, 아직도 독일 정부와 독일 국회는 계속해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와 추모 행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어디서 이뤄지고 있는가?
'취미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_조지 레이코프 (0) | 2018.11.22 |
---|---|
인간 실격_다자이 오사무 (0) | 2018.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