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회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후 다섯시즈음으로 기억하는데, 날씨가 좋아 창문을 통해 안으로 스며드는 석양빛이 아름다웠다. 버스 뒤편에는 중년 남자 한명과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똑같이 파란색 스포츠 티셔츠에 검은 반바지, 옷차림을 보아 함께 운동을 하고 돌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만 그 둘이 붙어 앉아있지 않았던 것이 특이했다. 아버지는 뒤에서 세번째 창가쪽 자리에 앉아있었고, 아들은 맨 뒤 구석에 엎드려있었다. 나는 그 둘의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말 그대로 좌석 두개를 차지해 엎드려있었다. 거의 눕다시피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잔뜩 토라져있던 것이다. 그 그림을 봤을 때 나는 '아버지한테 혼났나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20분가량을 버스는 달렸다. 마침내 내려야 하는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내 앞의 남자는 아들에게 다가가 "이제 내려야 해" 속삭였다. 버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엑셀이 밟히며 그 둘은 점차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그 그림을 기억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엎드려있는 아들에게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보냈던 시선 때문이었다. 그는 창밖을, 또는 앞을 보면서도 중간마다 계속해서 고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를, 나는 곱씹어 생각하고 있다.
그건 혹시 엎드려 있다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진 않을까, 또는 너무 심하게 혼낸 것은 아닐까 하는, 연민이 묻어난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리도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머릿속에서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나의 아버지가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마 아버지 당신도 나를 혼내고 이따금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련함이, 가슴 깊은 곳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독일 유학을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영상통화를 거신 적이 있다. 아버지는 대화 도중 갑자기 말을 멈추시더니, 내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 통화는 별 대화 없이 끝났지만, 나는 평소 무뚝뚝하고 완강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해버린게 아닌가, 그 생각에 47평방미터짜리 다락방 내 침대 위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몸을 뒤척였는지 모르겠다.
내 머리가 조금 크고 아버지께서 항상 되풀이하시는 말이 있다.
“다시 너희 아버지가 된다면 더 잘 할 자신이 있는데”
오십대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당신은 한참 전에 끝나버린 나와 내 동생의 유년기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아버지도 아버지는 처음이잖아요’ 하고 위로할 뿐이다. 하지만 그 역할을 두번, 세번, 또는 그보다 많이 맡는다고 해서 후회가 없을까?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